1996년 데뷔한 H.O.T.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활동 기간은 5년에 미치지 못했지만, H.O.T.가 구축한 아이돌 시스템과 팬덤 문화는 이후 K팝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모델로 자리 잡았다.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등 5명의 십대 소년으로 구성된 H.O.T.는 1996년 9월 7일 TV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팀명 H.O.T.는 ‘High-five Of Teenagers’의 약자로, 당시 10대의 감성과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그룹이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가 콘셉트를 먼저 기획한 뒤 이에 맞는 멤버를 캐스팅하고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거쳐 완성한 첫 번째 그룹이라는 점에서 기존 가수들과 차별화됐다.
당시 H.O.T.의 등장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종료와도 맞물렸다. 자연스럽게 결성된 그룹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달리 H.O.T.는 기획사가 콘셉트와 멤버, 음악, 이미지 등을 체계적으로 설계한 그룹이었다.
‘폭력의 시대’와 ‘Candy’로 만든 H.O.T.의 성공 공식
H.O.T.의 초기 성공을 이끈 핵심은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음악과 콘셉트를 동시에 선보였다는 점이다.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폭력의 시대’는 갱스터 랩과 학교 폭력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결합해 당시 10대들의 사회적 문제를 음악에 담았다.
이어 발표된 ‘Candy’는 밝고 경쾌한 이미지로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했다. 멤버들이 착용한 장갑과 털모자 등은 H.O.T.만의 상징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으며 음악뿐 아니라 패션과 이미지까지 팬덤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행복’, ‘We Are the Future’, ‘I Yah!’ 등 다양한 히트곡을 선보이며 밝은 콘셉트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오가는 전략을 이어갔다.
특히 강타가 작사한 ‘빛(Hope)’은 H.O.T. 해체 이후에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SM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상업적 성공도 컸다. H.O.T.의 첫 네 장 정규앨범은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당시 기준으로 전례가 드문 12개의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한국 대중음악 공연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22만 명 공식 팬클럽…한국형 K팝 팬덤의 시작
H.O.T.의 가장 큰 유산 가운데 하나는 조직적인 팬덤 문화다.
공식 팬클럽 ‘클럽 H.O.T.’는 활동 기간 약 22만 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했다. 비공식 팬까지 포함하면 팬 규모가 약 7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팬들은 현재 K팝 팬덤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응원 문화의 원형을 만들어갔다.
H.O.T.의 상징으로 흰색 풍선을 사용하면서 팬들은 공연장에서 동일한 색상의 풍선을 들고 응원했다.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채워지는 모습은 TV 화면을 통해서도 쉽게 식별됐고, 팬덤을 시각적으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K팝 콘서트에서 볼 수 있는 공식 응원봉과 팬덤별 색상, 조직적인 팬 응원 문화로 이어지는 초기 형태가 만들어진 셈이다.
H.O.T.의 인기는 공연장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확대됐다.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콘서트 관람을 위해 조퇴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교육 당국이 콘서트 개최와 관련한 조치를 내리는 일까지 나타났다.
중국 공연으로 한류 확산의 물꼬
H.O.T.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K팝의 가능성을 보여준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2000년 2월 중국 문화부의 초청으로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서 공연을 개최했다. 당시 중국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대규모로 주목받으면서 H.O.T.는 중국 내 한류 확산의 상징적인 그룹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강타는 당시 공연을 이후 한류 확산의 ‘시작점’으로 평가했다. 공연과 관련한 현지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대됐고, 이후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한국 가수들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는 훗날 본격적으로 성장한 한류와 K팝 글로벌 시장의 초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해체 이후에도 이어진 완전체 재결합
H.O.T.는 2001년 멤버들의 소속사 계약 문제를 둘러싼 협의가 결렬되면서 공식적인 그룹 활동을 종료했다.
하지만 해체 이후에도 팬들의 관심은 지속됐다.
2018년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완전체로 재결합한 H.O.T.는 17년 만에 팬들 앞에 다시 섰다. 당시 과거의 흰색 풍선은 무선 신호를 통해 색상을 변경할 수 있는 야광봉으로 발전해 있었다.
2019년 9월 고척스카이돔 공연을 비롯해 이후에도 멤버들의 재회가 이어지며 H.O.T.의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5명의 멤버가 약 25년 만에 함께 광고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과거 ‘폭력의 시대’, ‘Candy’, ‘We Are the Future’ 뮤직비디오의 의상과 메이크업을 재현한 영상 7편은 공개 하루 만에 조회수 1천만 회를 넘어서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H.O.T.에서 BTS·K팝 글로벌 시장까지
H.O.T.의 영향력은 현재의 K팝 산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획사의 체계적인 캐스팅과 연습생 트레이닝, 멤버별 역할과 콘셉트 설정, 음악과 패션을 결합한 스타 이미지, 공식 팬클럽과 응원 문화 등 오늘날 K팝 아이돌 산업에서 일반화된 요소들이 H.O.T.를 통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제시됐다.
특히 H.O.T.가 보여준 ‘기획된 아이돌 그룹’이라는 모델은 이후 수많은 K팝 그룹의 제작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세계적인 K팝 콘텐츠가 등장하는 과정에서도 H.O.T.와 서태지와 아이들 등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K팝 관련 콘텐츠를 연출한 제작진 가운데에서도 어린 시절 H.O.T.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접하며 성장했다고 밝힌 사례가 등장했다.
H.O.T.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그룹에 그치지 않는다. 5명의 십대가 시작한 새로운 아이돌 실험은 음악, 패션, 팬덤, 공연, 해외 진출을 하나의 산업 모델로 결합했고, 이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는 K팝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GM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