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026년 병오(丙午)년은 한‧베 교류 역사의 신기원이 된 화산(花山) 이(李)씨 중시조 이용상(李龍祥) 왕자가 다이비엣(大越)국을 떠나 고려로 망명한 지 8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8월 10일 또럼(Tô Lâm) 총비서의 국빈 방한, 10월 30일 경주에서 개최된 '2025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르엉끄엉(Lương Cường) 국가주석이 방한하여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협력 관계를 심화시켰다.
한‧베 관계는 ‘산고수심(山高水深)’의 관계로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 800년 전 이용상 왕자의 고려로의 망명은 우연이었다. 그 우연이 한‧베 교류의 시원이 되었다.
이용상 왕자의 망명 당시 다이비엣(大越)국의 정치적인 상황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베트남의 리(Ly. 李) 왕조(1009~1225)는 216년간 존속했던 베트남 최초의 장기 독립 왕조였으나 무혈혁명으로 쩐(陳) 왕조가 뒤를 이었다.
리(李) 왕조 7대 고종(高宗: 1173~1210) 때 민란이 발생하자 왕은 몽진(蒙塵)을 갔고, 태자는 타이빈(Thái Bình) 지방의 세력가 쩐리(陳李)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쩐리는 자신의 딸과 태자를 결혼시켰고, 사병을 동원하여 민란을 진압하고 고종을 궁으로 모셨다. 고종이 환궁 후 서거하자 16세의 태자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바로 8대 혜종(惠宗: 1194~1226)이다. 혜종은 병약했고, 즉위 14년이 되는 1224년에 출가하지 않은 7세의 둘째 딸 펏낌(佛金)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불문에 들어가 혜광선사가 되었다가 3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펏낌이 마지막 9대 찌에우호앙(Chiêu Hoàng, 昭皇:1218~1278)이다.
당시 쩐리 동생의 아들인 쩐투도(Trần Thủ Độ, 陳守度:1194 ~1264)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 쩐투도는 찌에우호앙을 쩐리의 손자인 8세의 쩐까인(Trần Cảnh, 陳煚:1218~1277)과 결혼시켰다. 그리고 1225년 12월 11일, 왕위를 남편 쩐까인에게 양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에, 찌에우호앙이 남편에게 왕위를 넘기니 쩐(陳)왕조(1225~1400)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리(Lý)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이용상 왕자는 6대 영종의 일곱째 아들로 찌에우호앙의 종조부였다. 나라가 망하고 쩐(陳)씨 세력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느낀 이용상 왕자는 탈출을 결심하였다. 종친 어른으로 조상의 위패와 함께 3척의 배로 하이퐁, 도선(Đồ Sơn)을 떠나 송(宋)나라를 거쳐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1226년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하였다.
그는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몽골군과 싸워 전과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고려 고종은 그를 화산군으로 봉하고 정착을 도왔으며,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이씨를 리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하고, 매년 리 왕조 출범일(음력 3월 15일)에 화산이씨 종친회를 초청해 기념식을 진행한다.
이 사건이 바로 한‧베 교류사의 서막을 열었고, 이용상 왕자가 한반도에 정착한 베트남 교민 1호가 된 것이다.
왕권을 남편에게 넘긴 찌에우호앙은 쩐(陳) 태종(太宗)의 왕비가 되었다. 찌에우호앙은 첫아들을 잃고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하자, 쩐투도는 1237년에 찌에우호앙의 친언니이자 임신 3개월의 태종(太宗)의 형수 즉, 쩐리에우(Trần Liễu, 陳柳)의 부인인 투언티엔(順天) 공주를 왕비로 삼고, 찌에우호앙을 폐비시키고 공주로 품계를 격하시켰다.
아내를 동생에게 빼앗긴 쩐리에우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난은 곧바로 진압되었다. 태종은 형의 반역죄를 묻지 않았고 현재의 꽝닌지역 일부를 식읍으로 주고 조용히 살도록 하였다.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왕도 못되고, 아내마저 동생에게 빼앗긴 한(恨)이 사무쳐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면서, 쩐리에우는 아들 쩐꾸옥뚜언에게 나라를 빼앗으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쩐꾸옥뚜언은 부친의 유언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쩐꾸옥뚜언은 3차례의 몽골 침략 가운데 2차와 3차 침략을 총사령관으로서 군관민을 지휘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쩐꾸옥뚜언은 타이똥(太宗)의 조카(형의 아들), 2대 타인똥(聖宗)의 사촌형이자 매부, 3대 년똥(仁宗)의 5촌 당숙이자 장인, 4대 아인똥(英宗)의 외조부로서 종실의 핵심인물이었다.
타인똥(聖宗)은 쩐꾸옥뚜언의 누이를, 3대 년똥(仁宗)은 쩐꾸옥뚜언의 딸을, 4대 아인똥(英宗)은 쩐꾸옥뚜언의 손녀를 각각 왕비로 맞이했다. 쩐꾸옥뚜언의 아내와 며느리는 모두 공주였다.
쩐꾸옥뚜언은 몽골의 3차 침략을 물리친 다음 해인 1289년 음력 4월 ‘인무흥도대왕(仁武興道大王)’으로 추대되었다. 이때부터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은 식읍(食邑)으로 받은 하이즈엉성(省) 찌린, 반끼엡(Vạn Kiếp, 萬劫)에서 1300년 8월 20일 운명하였으며 그곳에 ‘끼엡박(Kiếp Bạc)사당’이 건립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곳곳에 사당이 건립되어 흥도대왕(興道大王)을 추모하고 있다. 쩐(陳) 왕조의 단결력은 왕실의 부계 친족 사이의 근친혼에 의한 결속이 대몽항쟁의 큰 구심점이 되었다.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은 16세기 말 임진왜란에서 한민족을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같은 베트남의 위대한 민족 영웅이다.
짠흥다오 장군은 “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며,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수적인 열세(12척:330척)를 극복하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떠오르게 한다.
쩐흥다오 장군은 바익당(Bạch Đằng)강 전투에서 몽골 수군을 괴멸시켜 대승을 거둔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1일 국빈 방한한 또럼(Tô Lâm) 베트남 총비서(왼쪽)가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과 베트남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확대하기로 했다.
하노이에서는 1월 19일부터 2월 5일까지 제14차 베트남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전국 약 5백5십만 당원을 대표하는 1,600여 명의 대표가 모여 지난 40년간의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5년간 당의 정책 기조를 발표한다.
아울러 2026년~2031년까지 5년간 당의 정책 구현을 담당할 인사들이 임명되고, 2월 17일 설을 쇠고 뗏(Tết. 베트남 음력설) 연휴가 끝나면, 2045년 건국 100주년 선진국 진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달음박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인 2026년은 베트남에 제16대 국회의원, 34개 중앙직할시와 성(省)급 행정단위의 각급 인민회의 의원 선거가 있다.
베트남의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1986년 도입된 개혁·개방 정책으로, '도이'는 '변경한다', '머이'는 '새롭게'라는 뜻으로 '쇄신'을 의미한다.
이 정책을 통해 베트남은 1990년대 이후 연평균 6~8%대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 동남아의 대표적 신흥 제조 거점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하며 ‘아시아의 신룡(新龍)’으로 불리고 있다.
또럼(Tô Lâm) 베트남 총비서는 지난 3월 도이머이 정책 도입 40년을 성찰하고 ‘포스트 도이머이’를 선포하며 정부조직과 행정구역 통폐합 단행 등 대대적인 국가 대개조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7,500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 전 세계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상위 중소득 국가 그룹 발표에 따르면, 베트남은 이제 상위 중소득 국가의 문턱에 서 있다.
2045년은 독립 선언과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때까지 선진국 진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모으고 있다. 이번 제14차 베트남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한‧베 교류 역사 800년이 되는 2026년이 한‧베 관계가 ‘산고수심(山高水深)’의 관계로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기념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글쓴이: 안경환 하노이 명예시민, 전) 조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