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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에 이르는 길 첫번째 :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양극화된 분열과 그로 인한 분노 그리고 어느 편에도 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나라지만 베트남에서 막연히 느끼던 것들을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매우 불편한 노릇이다. 이런 상황 때문일까 글을 쓰기 위해 앉으면 떠오르는 단어가 분열, 용서 그리고 화해 같은 단어들이다. 이 나라가 뒷걸음을 치는 것인지 도약을 위한 아픔을 경험하는 과정인지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지만 바라건대 이 시기를 지나며 개개인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 간절함으로 새해에 묵상하게된 성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상담에서의 개인적 성숙을 다루겠지만 이 일이 사회적 성숙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신분석학에는 각 학파에 따라 다양한 성장 발달이론이 있다.그 가운데 대상관계학파의 창시자인 멜라니 클라인의 성장 발달이론에 비추어 성숙에 대한 생각을 펼쳐보겠다. 대상관계 이론은 자신과 관계하는 중요한 타인을 의미하는 대상object과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이론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들은 과거에 이루어진 관계의 영향을 받아 재현된다는 것이다. 즉, 유아기 또는 어릴 때 주요 양육자(부모)에 의해 내재화된 대상관계가 그 후 모든 대인관계에서 재현되고 반복된다는 것이다. 내재화된 타인에 대한 이미지 혹은 그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이미지는 잘 변하지 않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개인의 정서상태와 행동에 계속 영향을 준다.

 

클라인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멸절에 대한 깊은 편집증적 공포와 완전히 버림받을 것 같은 우울 불안 과 싸우는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원시적인 환영같은 이미지와 환상 그리고 공포가 끝임없이 각양각색의 문양을 만드는 만화경에 마음을 비유했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의 정신도 이처럼 항상 불안하고 유동적이며 끊임없는 정신병적 두려움을 안고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미술치료를 통한 아동 정신분석을 실행하며 정신분석학 발달에 큰 업적을 남기는데 그것이 ‘편집-분열적 자리paranoid-schizoid-position’ 및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tion’라고 불리는 개념들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자리 이론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숙고해 보도록 하겠다.

 

그녀는 어린이의 정신분열증 치료에 '놀이치료'를 처음으로 도입하여 정신분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인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자유연상 기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어린이들의 놀이를 해석하며 그녀는 아이들이 꿈꾸는 것을 놀이에 표현한다는 것과 그들의 세계에 “환상"이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아이의 정신 세계 속에 대상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들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유아가 좋은 대상과 좋은 감정으로부터 나쁜 대상과 나쁜 감정을 분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로널드 페어베언(Ronald Fairbairn)의 ‘분열적 자리’라는 개념을 수용하여 ‘편집-분열적 자리’라는 새로운 용어로 통합하여 불렀다. 이 자리는 생후 4-5개월 전에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게 되면 고착이 일어난다.

 

이 시기의 유아는 편집분열적 정신 세계 안에서 엄마를 젖으로 보는 부분 대상 관계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박해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염려가 크고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고착되면 중립이 없고 모든 것이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분리 되며 이 분열성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자신, 대상, 환경 등을 좋거나 나쁜 것 둘로 나누는 성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쁜 것들을 분열된 대상 중에서 어느 하나의 대상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또한 대상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 없을 뿐 아니라 가학적이며 대상을 해치는 것을 염려하지도 않고 만약에 해치더라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결코 온전한 대상관계라고 볼 수 없다.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받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외부세계와 피해 망상적인 관계를 맺는 병리적이고 미성숙한 관계다.

 

분열된 한국 사회가 겪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일까? 답을 찾기에는 내겐 너무 버거운 질문인지라 서론이 길어진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사회가 아직 편집-분열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면 그 다음 우울 자리를 너머 초월 혹은 성숙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말하라고 하면 한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심리적 상처일수도 컴플렉스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한국 사람들의 정신적 어두운 면들을 표현하는 개념으로서의 한은 편집-분열자리와 관련된 특성이 있다. 이재훈 교수[1]는 “원한” “허한” “정한”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이재훈 교수, 한국상담목회협회 주최 제1회 심포지움 발표안

 

Hwa Byung이란 질병으로 DSM 4까지는 급성 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신경증으로 분류되었던 원한은 누군가로 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박해불안이 있으며 그 뿌리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원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상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없으며, 대상을 신뢰할 수도 없고, 대상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부정하고, 흑백 논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병적 동일시에 갇히는 심리적 특성들을 지닌다. 원한의 또 다른 표현인 허한이 가지는 사회적 심리는 허무주의와 사회집단행동에서 나타나는 군중심리에 약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심 자아가 약해서 강한 힘에 빨려 들어 간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 쉽고 파괴적 행동에 참여하면서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반면 소월의 “진달래”에서 발산되는 한국의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정서인 정한은 대상에게는 사랑을 자신에게는 미움을 발산하는 자학적인 경향 때문에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미숙한 형태의 책임의식은 오히려 고통스러운 자신에 대해 부정하므로 상처입은 자신의 실재에 대한 성찰이나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그 결과 우울적 자리로 진입하거나 성숙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생후 첫 해의 후반에 아이는 완전한 대상을 내사하고 통합하는 일에 큰 진척을 보인다. 이 때 대상관계의 주요 변화는 대상(엄마)을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측면이 분리되지 않은 통합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울적 자리에서 전체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자기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대상에 대해 염려로 자기를 자책하고 자학한다. 이것이 병리적으로는 우울증의 소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 우울감을 경험하며 자신의 심리 실재와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이 커지고, 내외적 상황에 대한 통합이 이루어진다. 우울적 자리와 편집 분열 자리를 오가면서 인격적인 성장은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부분대상에서 전체 대상으로의 통합, 책임감의 수용, 애도할 수 있는 능력 등 우울적 자리의 과제가 완성되면 또 다른 수준의 경험으로 초월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성숙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상처를 지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간다. 그렇게 상처는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행동들 때문에 내 자신이 고통을 받는 것이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내 마음 안에서 그 사건이나 행동을 상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통과 분노를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외적 상황에서도 내적으로 느끼는 마음의 상처나 그로인해 느끼는 고통이 개인마다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상담은 어떤 상황에 대해 마음과 의식이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며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왜 매번 반복되는 생각과 감정에 빠지고 그에 따라 패턴화된 반응을 하는지를 내담자가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좀 더 유연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경험자가 아님 관찰자로써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앞으로 몇회에 걸쳐 연재될 글에서는 미성숙한 자리에 머물러있는 개인, 혹은 사회가 어떻게 성장과 성숙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다루고 싶다. 내적으로 입은 상처 혹은 한으로 인한 편집 분열적 특성이 내겐 어떻게 드러나는지 아니면 어떻게 우울적 자리로 그리고 초월적 자리로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필자 개인과 주변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며 함께 관찰하고 싶다.

 

최상미 상담학 교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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