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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미의 심리] 그림책이 내게 묻다: 내일 또 싸우자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이혼했어요.’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니었나? 이렇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이혼의 아픔을 돈벌이에 이용하다니 해도 너무하네! 이혼의 사실을 다시 들춰내어 세상에 공개하다니 한국도 참 많이 변했군!  이런 잡다한 생각을 안고 처음 보기 시작했다. 방송 제작진에게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그렇게 입문하여 제작진의 편집과 소위 주작의 손맛이 느껴짐에도 가끔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또 안타까운 마음으로 출연한 커플들의 삶을 듬성듬성 들여다 본다. 그들 가운데 오랜 여운을 남긴 커플은 이혼 후 짐을 찾으러 온 전 남편과 거의 20년만에 처음으로 묵혀온 감정을 쏟아내며 싸웠던 이들이다. 눈물 콧물을 빼며  꼭꼭 숨겨 두었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자책감을 아내가 쏟아 놓으면서 시작된 그 싸움 이후에 그들은 비로소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진심을 담아 마음을 나눈다. 진작 그렇게 싸웠더라면, 그리고 진작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진심이 묻어나는 사과를 하며 화해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커플들은 오래 묵혀온 문제들로 인해 반복되는 갈등 가운데 살다가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결 지향적으로 잘 싸우는 법을 모르는 부부들이 어찌 그들 뿐이겠는가? 이혼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싸움에 참으로 미숙하다. 살면서 갈등을 경험하지 않는 인간 관계는 없다. 그러므로 갈등은 회피하거나 무시할 문제가 아니다. 갈등이 존재함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무시하면서 표면적 혹은 형식적인 조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관계는 병들어 간다. 그래서 갈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비록 괴롭긴 하지만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갈등은 타인과 자기에 대한 모순된 태도, 모순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그 경향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반복되는 패턴과 모순된 경향성을 발견하는 자기분석을 할 수 있다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 부부의 갈등 패턴은 달라진다.

 

위에서 소개한 아내는 어떤 상황에도 이혼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들이 경험하는 갈등을 무시한 채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했던 부정적인 경험들 때문에 갖게 된 절대로 이혼은 안할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 싸우면 자신들의 관계는 끝날 것이다. 내가 분노를 한 번 터트리면 결코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참으면 온 가족이 편안할 것이라는 등의 모순된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안정적인 관계나 애정에 대한 신경증적인 욕구는 더욱 두려워하고 공격적이 되도록  만들며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더 큰 소외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갈등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더 많이 직면하고 싸움까지도 불사하며 문제 해결을 시도할수록 결국은 내적인 자유함과 힘을 얻을 수 있다. 위의 커플이 그러했다. 이혼까지 결심하게 만든 아내의 상심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전하며 용서하고 화해하는 극적인 과정 이후에 그들은 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앉았다. 그 장면은 마치 다음에 소개할 그림책의 주인공 상두와 호두가 치열하게 싸운 후에 끈끈한 형제애를 확인하며 집으로 향하는 모습과 같았다. 오늘 잘 싸웠다. 내일 또 잘 싸우자.

이런 무거운 주제에 그림책이 왠말이냐 싶지만 갈등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어려서부터 훈련될 수 있다. 마침 싸움과 관련해 소개할 수 있는 명쾌한 그림책을 찾았다. ‘내일 또 싸우자.’ 이 책은 올바르게 잘 싸우는 방법을 다룬 그림책이다. 싸우는 상황에 마주했을 때 잘만 싸운다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을 이 책은 유쾌하게 보여준다. 두 형제는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집에 놀러왔다. 그런데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싸움을 아예 놀이의 장으로 끌어들여 잘 싸우는 방법을 배우게 한다. 말싸움, 주먹싸움, 몸싸움, 감정싸움, 풀싸움, 눈싸움, 닭싸움, 머리싸움, 꽃싸움, 연싸움, 물싸움까지 상두와 호두는 참으로 다양한 싸움들을 하며 점차  치열하지만 공정하게 싸우는 방법을 터득한다. 모든 싸움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기에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공정하게 벌인 싸움을 끝마쳤을 때 승자든 패자든 한 걸음 더 성숙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그림책은 보여준다.

 

 

그렇다면 잘 싸우기 위해 우리가 터득해야할 규칙은 무엇일까?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꼭 터득해야 할 것은 감정의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은 싸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갈등으로 인해 우리는 관계 가운데 고통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이나 두려움이 커질수록 우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표현하게 된다. 꾹꾹 눌러 놓은 분노는 마치 가스통과 같아서 결국은 극한 분노로 표출된다. 이처럼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분노이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루는 일은 잘 싸우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반드시 익혀야만 할 과제다. 분노를 잘 다룬다 함은 이 감정을 적합하게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내 자신도 차후에 난처해지지 않을 정도의 적합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일의 첫 걸음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노를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표현에 동반되는 두 문제 즉, 자기 주장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공격성을 이해하고 구분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과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상대에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관계를 맺는다.

 

분노의 표현과 더불어 ‘우리 이혼했어요’의 위 커플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내가 자신의 감정을 쏟아 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남편이 보였던 태도였다. 본인이 별 생각없이 했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내의 마음에 그토록 큰 상처를 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을 때, 어떤 위로의 말도 전헤질 수 없을거라 여겨지던 그 때 그가 눈물로 전해 준 진심어린 사과의 말 한 마디.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 한 마디가 용서와 화해를 끌어냈다. 아내의 입장에 서 보고 진심어린 경청을 통해 아내가 되어 보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정말 미안해. 어줍잖은 위로나 변명보다 진심어린 사과가 상처를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준다. 남편의 용기있는 사과는 아내의 진심어린 용서를 끌어냈다. 결국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 싸움은 정말 잘 싸운 싸움이 아닐까! 좀 더 일찍 이렇게 싸울 수 없었던 것이 내내 아쉽지만 이들도 상두와 호두처럼 “오늘 잘 싸웠어. 내일도 싸우자” 하는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

-최상미 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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