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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대만에서 베트남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자리 잡기의 교훈

자원 부족한 작은 경제가 세계 반도체 중심으로…대만의 50년 여정, 베트남에 던지는 메시지

 

1974년 설 연휴 직후 첫 출근일 아침, 타이베이 도심의 평범한 국수집에서 일곱 남성이 만났다. 이 소박한 아침 식사는 훗날 ‘전설의 국수 한 그릇’으로 불리며 대만 경제와 글로벌 기술 산업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미국 RCA 연구소 소장인 판원위안(潘文淵)은 대만 경제부문 수장 손운선(孫運璿)에게 “집적회로(IC)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IC는 트랜지스터 등 미세 부품을 반도체 칩 하나에 통합한 핵심 부품으로, 오늘날 프로세서와 메모리, 모든 전자 시스템의 기반이다.

 

판 소장은 “1000만 달러와 4년 정도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당시 대만으로선 천문학적 금액이었지만 손운선은 과감히 승낙했다. 1973년 오일쇼크로 경제가 휘청이고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던 시기, 자원 없는 대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이었다.

 

1976년 대만은 RCA로부터 반도체 기술 이전 계약을 따냈고, 그해 4월 첫 엔지니어 단체를 미국으로 파견했다. 1년간 설계·공정·공장 운영까지 집중 훈련을 받은 이들 가운데는 훗날 스마트폰 칩 선두 기업 미디어텍 회장이 된 차이밍제(蔡明介)도 있었다.

 

“우리는 개척자로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기술을 대만에 가져와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졌다.” 차이 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대만은 기적을 썼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과일·신발·우산 등 저기술 제품을 주로 수출하던 섬나라가 이제 전 세계 반도체 칩의 60%, 최첨단 칩의 90%를 생산한다.

 

대만 성공의 핵심 요소

 

대만 반도체 산업의 부흥은 정부의 방향 설정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국책 연구기관 공업기술연구원(ITRI)을 통해 기술 이전을 주도했고, 모든 초기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민간 성장을 목표로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1977년 ITRI는 시범 공장을 가동해 초도 양품률 70%를 달성, RCA 본사보다 높은 성과를 냈다. 이 공장은 수익이 아닌 신뢰 구축이 목적이었다. 제품을 국내 기업에 무상 배포하며 민간의 R&D 투자를 유도했다. 불과 1년 만에 ‘메이드 인 타이완’ 전자시계를 생산하며 세계 3대 전자시계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민간이 여전히 위험을 꺼리자 정부는 직접 자본을 투입해 1980년 대만 최초 상업용 칩 기업 연합전자(UMC)를 설립했다. 안착 후에는 지분을 모두 매각해 완전 민영화했다. 수십 년간 세제 혜택·전력·용수 지원·자본시장 개혁·전문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산업을 뒷받침했다.

 

인재 양성도 핵심이었다. RCA 연수생들이 산업의 중추가 됐고, 정부는 해외 인재 귀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기업들은 스톡옵션으로 인재를 유치했고, 대학은 산업 수요에 맞춘 실험실과 커리큘럼을 강화했다. 초중등 교육부터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을 강조하며 장기 인력 기반을 다졌다.

 

신주(新竹) 과학단지는 이 모든 요소가 집약된 공간이다.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는 “신주는 대만이 핵심 기술 역량을 키우고, 인재를 훈련하며, 주요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제조사와 지원 서비스 업체가 밀집해 있어 공장 가동 중단 시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

 

‘파운드리’라는 독창적 선택

 

대만의 진정한 독보성은 ‘전 공정 독점’이 아닌 ‘협력’을 택한 데 있다. 1970년대 미국은 인텔·IBM 같은 종합반도체(IDM) 기업이 설계부터 제조·패키징까지 모두 담당했다.

 

대만은 자본과 기술 한계를 인정하고 ITRI 소장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가 제안한 ‘전문 파운드리(위탁생산)’ 모델을 선택했다. 설계 기업(팹리스)만 칩을 설계하고 제조는 대만에 맡기는 구조다.

 

1987년 TSMC가 설립됐을 때만 해도 기술은 인텔에 뒤졌지만, 퀄컴·브로드컴 등 팹리스 기업이 부상하고 스마트폰 붐이 일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애플이 인텔에 아이폰 칩 생산을 의뢰했다가 거절당하자 TSMC로 돌아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오늘날 최첨단 공장 건설 비용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고, 팹리스 기업들은 파운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TSMC와 대만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했다.

 

베트남이 배울 점

 

베트남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드는 지금, 대만의 여정은 소중한 교훈이다.

 

첫째, 외국 자본·기술 유치 노력이다. 대만처럼 베트남도 우대 정책으로 투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올해 시행된 정부령 182/2024호는 반도체 등 첨단 프로젝트에 국가 예산 지원을 허용한다.

 

둘째, 공급망 내 ‘적합한 위치’ 선정이다. 전 가치사슬을 장악하려 하지 말고 특정 전략 구간에 특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셋째, 인재 양성이다. 대만 1970년대처럼 젊은 인구가 강점인 베트남은 기술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이다. 1974년 국수집 제안부터 TSMC의 오늘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초기 성과가 미미하더라도 민간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만의 국수 한 그릇이 바꾼 역사는 베트남에도 “지금이 시작할 때”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시장의 96%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 최신 데이터(2025년 3분기 기준)로 상위 10대 기업과 시장 점유율

 

순위 기업명 시장 점유율
1 TSMC 71%​
2 Samsung 6.8%​
3 SMIC 5.1%​
4 UMC 4.2%​
5 GlobalFoundries 3.6%​
6 HuaHong Group 2.6%​
7 Vanguard 0.9%​
8 Nexchip 0.9%​
9 Tower 0.9%​
10 PSMC 0.8

 

TrendForce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상위 10개 기업의 총 매출은 전분기 대비 8.1% 증가한 약 451억 달러를 기록했다. TSMC의 점유율 확대는 AI 및 첨단 공정(7nm 이하) 수요에 힘입은 결과이며, 중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각화로 성장세를 보였다. Samsung과 SMIC은 여전히 2, 3위를 유지하나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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