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돈 때문에 결혼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응우옌티바이(Nguyen Thi Bay) 씨. 이제 그녀는 수천 명의 베트남 신부들에게 법률·문화 지원을 제공하는 '다리'가 됐다.
11월 말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린 화성-수원-오산 베트남 기업인 협회 출범식에서 바이 씨(39)는 4시간 동안 통역을 맡았다. 행사 직후 집으로 돌아가 소갈비탕 끓이는 법, 김치 담그기, 결혼 비자 면접 팁 등을 담은 영상을 제작했다. "새로 온 신부들이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헤매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2008년 대학 졸업 직후 중매로 14살 연상의 한국 남성과 결혼한 바이 씨. 출국 전 독학으로 한국어 중급(TOPIK 4)까지 따냈지만, 경기 용인 생활은 상상과 달랐다. 취업 문턱은 높았고, 편견은 더 컸다. "만난 사람 다섯 중 셋은 '남편이 돈 많이 주냐, 베트남에 얼마 보내냐'고 물었다"는 그녀의 회상처럼, '가족 부양 위해 맹목적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라는 선입견이 그녀를 여러 번 포기하게 만들었다.
전환점은 결혼 9개월 만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상담·통역사로 취업하면서 찾아왔다. 베트남-한국 가정 갈등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심리학 공부와 언어 실력 향상으로 기회가 넓혔다. 2013년 삼성전자 번역 부서 유일한 베트남인 직원이 돼 베트남 파견 기술자 교육을 동행했다. 출산 후에는 서울 법원에서 일하며 매일 3시간 통근했지만, 남편이 가사·육아를 분담하는 '비전통적' 역할 분담으로 안정됐다.
5년 전부터는 새 신부들의 문화 충격을 보고 유튜브 채널을 열어 시어머니에게 배운 요리와 삶의 경험을 공유한다. 최근 2년간은 한국 법원 판사 핸드북을 번역해 베트남 결혼·가족법을 알리며, 한국 법원의 베트남 신부 인식을 바꿨다
바이 씨처럼 2000년 이후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11만 명을 넘는다. 한국문화원 베트남 전 원장 박낙종(Park Nark Jong) 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브로커 중매가 많았고, 언어 장벽·경제 의존으로 약자 위치였으나 20년 만에 변했다. 이제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며 양국 문화 다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2024년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신부 중 베트남 출신은 약 26.8~32.1%로 중국을 제치고 1위다. 다문화 가정 출생아도 전년 대비 10.4% 증가하며 한국 인구·사회 구조에 필수적 요소가 됐다.
초기 언어 장벽, 음식·육아 방식 차이, 베트남 송금 압력, '동화 대상' 편견으로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았으나 상황이 호전 중이다. 2024년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서 차별 경험률은 13%로 3년 전 16.3%보다 낮아졌고, 다문화 수용 지수는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 낙종 씨는 "20년간 성공한 베트남 여성들이 늘며 한국 사회의 다문화 인식이 개선됐다. 공무원·의사·회사원 등 다양한 계층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의 존엄을 존중하고, 베트남 여성들도 경제 발전으로 행복 추구 기회가 커졌다. 가족 존중 문화, 자신감·적응력을 가져와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사회 활력을 더한다"고 말했다.
인천시 베트남 여성 지원단체 대표 호앙티하(Hoang Thi Ha) 씨 사례도 비슷하다. 10년 전 한국 와서 결혼한 그녀는 시어머니와 언어 장벽으로 고생했다. "시댁 동거 신부 10명 중 9명이 문화 차이로 갈등"이라는 경험담이다. 삶이 안정된 후 일하고 아이 키우며 공동 어려움을 깨닫고 100명 규모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서류 번역, 병원 동행 등을 돕고, 4년째 다문화센터 방문해 새 신부 무료 한국어 수업과 자녀 베트남어 수업을 요구한다.
"언어와 이해가 편견 없애고 두 문화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하 씨는 강조했다.





















